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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쉬마이 아윱

무슬림 영묘(마자르)는 부하라 북-서쪽 부근에 위치합니다. 14-16세기에서 건립된 콤플렉스는 지야랏하나(숭배방), 칠라하나(40일 동안 혼자 생활하는 방), 아윱의 묘가 있는 구르하나, 샘물인 것 같은 민물이 있는 신성한 우물(쟈쉬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지 전설에 의하면, 이 물은 피부 질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콤플렉스 근처에는 최근 과거까지는 큰 공용 묘지가 있었습니다.

고고학적인 설계 연구와 마졸리크 비문 결과에 의하면, 콤플렉스의 주요 부분은 1383년 아미르 하드자드 노력으로 지어졌고 세이바니 왕조 압둘라한 II (1583-1598) 시대에 복원되어 완공되었습니다.

윱의 허위적인 무덤에는 나무 판이(68×157 sm) 설치되어, 판 위에는 코란 내용(바카라, 256-257)이 나오는 글이 쓰여 있고 아윱의 부하라 방문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쓰여져 있습니다.

지만 아윱의 정확한 묘 위치에 대한 정보를 다양한 무슬림 작가들이 다양하게 말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이브 알 길라비, 안 나와위)는 하우란 마을이라고 하고, 나머지(알 마수디, 야쿠트)는 나와 마을이라고 하며, 이 두 마을은 모두 다마스크 근처에 위치하고 그 당시의 아윱의 묘는 우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떠한 설명 내용에는 예언자에 대한 이야기에는 (예를 들어, 아트 타바리, 안 니사부리) 어떤 예언자가 (바누 이스라엘에서) 부하라를 방문하여 시민들에게 은총을 내렸다는 희미한 정보가 나와 있습니다.

9세기 말에는 마베란나흐르 전설가들은(특히 알 군자르) 동 예언자가 아윱이라고 정확하게 여겼고 그의 무덤은 부하라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내용은 현지 구두 전통에 의했을 수도 있으며, 부하라 도시가 «약속과 은총을 받은 도시», «이슬람의 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절차의 일부일 수도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 «세번째» 묘지가 생긴 이유는, 부하라에 있는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숭배 장소들의 이슬람화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고 이런 경우에는 아윱의 이름이 규정대로 (코란) 간소화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쟈쉬마이 아윱은 부하라에서 중요시하게 여기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온 중앙아시아에서 숭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물이 약효가 있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물을 받아 가고, 아윱 예언자 무덤 숭배(타바프)를 하고, 무덤 위에는 (사가나)에 쌀, 밀, 바질 등을 버립니다.

건물 밖, 미흐랍 앞에는 사람들이 기도를 합니다. 숭배는 오래된 전통의 흔적을 보전합니다.
카라칼파크스탄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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